[밀리의서재] 세계 여성의 날, 세상을 바꿔준 여자는?
빵과 장미, 그리고 자유를 원하던 여성들
1908년 3월 8일 미국, 광장에는 여성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수많은 인파가 된 그들은 외치기 시작했어요, 빵과 장미를 달라고. 사실 이들은 캄캄한 의류 공장에서 적게는 하루 12시간에서 많게는 18시간까지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는데요, 당시 여성 노동자의 경우,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투표권도 없어 최소한의 의견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권의 상징인 ‘빵’과 참정권을 상징하는 ‘장미’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거예요. 이후 UN에서는 이를 기념하며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했죠.
출처 : 언스프래쉬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외친 이들처럼, 먼저 세상을 바꾼 용기있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에도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해내간 여성이 있어요. 바로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나혜석 작가입니다.
나혜석은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대표적 신여성’이었어요. 그리고 항상 여성도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하며 여성 문제를 주제로 글을 쓴 작가이기도 했죠. 특히, 자신의 결혼부터 이혼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이혼 고백장>으로 남성 중심적인 당대의 관습을 비판하며 큰 파란을 일으켰어요. 다음은 <이혼 고백장>에 실린 글의 일부예요.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 사람쯤 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이 글이 대중 잡지에 실리자 나혜석은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는데요, 당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질서에 모두가 순응했기 때문에 경성이 발칵 뒤집힌 거죠.
또 다른 글에서는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 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라고 말했는데요. 의무로 여겼던 정조를 선택의 문제로 치부한 거였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정조를 지키기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여성에게만 정조와 희생이 강요되는 것이 부당하다는 거였어요.
나혜석은 당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글을 발표하며 침묵하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었죠. 여성 이전에 동등한 사람으로서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권리니까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이들의 용기가 필요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처음 듣는 단어가 어렵게만 느껴져요."
"핵심 문장을 찾아 밑줄을 긋거나 번호를 매기면서 글의 내용을 정리해보세요."
글은 보통 핵심 내용과 부연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윗글은 나혜석이라는 인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글이므로 나혜석이 한 일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보면 돼요.
1.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세계 일주를한 대표적인 신여성
2. 여성 문제에 대해 글을 쓴 작가 ex) 자신의 결혼과 이혼 과정을 담은 <이혼 고백장> 집필
3. 여성에게만 강요하는 정조관 비판
이렇게 정리해보면, 내용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요. 정리한 내용을 보면 조선 최초로 이혼을 했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죠.
당당하게 시대와 맞선 이야기
여성의 이야기로만 국한시키기 보다 시대에 맞선 한 인간의 이야기로 바라봐도 좋아요. 더불어 나혜석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며 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의 모습과 시대상까지도 알 수 있어요.
마음 속 밑줄 한 문장
나는 영혼의 매력이 깊은 것을 알았고 따라서 자기 자신의 인격적 우아함으로 색채가 풍부한 신생활을 창조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