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서재] 62년 전 오늘, 4.19 혁명이 일어났던 이유는?
4‧19혁명이 일어났던 이유는?
올해는 4‧19혁명 62주년이 되는 해예요. 4‧19혁명은 1960년4월 19일, 이승만 정부에 항거해 시민과 학생이 중심이 되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을 끝낸 시민 혁명이죠. 한국사 처음으로 국민이 봉기하여 정권을 쓰러뜨린 사건으로 민주주의의 첫 승리라 불려요. 186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6000명이 부상을 입었던 ‘피의 화요일’.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을 통해 4‧19혁명의 그날로 돌아가 역사적 순간을 되돌아보고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있기까지 평범한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아요.
출처 : 언스프래쉬
먼저,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아요. 1960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정권은 부통령 후보로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자였던 민주당의 선거 운동을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했고 결국, 1960년 3월 15일 대대적인 부정 선거가 치러졌죠. 자유당은 선거 1년 전부터 부정 선거를 기획하고 이를 공무원들에게 교육시켰어요. 뿐만 아니라 자유당 유권자에게 자유당이라는 완장을 주고 투표소 부근에 머물게 해 유권자에게 심리적 압박을 주거나, 선거 당일 민주당 개표 참관인을 개표소에서 내쫓고 투표함에 사전에 기표된 부정 투표 용지를 투입하는 등 부조리가 난무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부정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선거가 종료되기 이전인 오후 4시 30분경 이미 민주당은 선거를 불법이라 하여 선거 무효를 선언했어요. 특히 선거 부정이 심했던 마산에서는 오전에 이미 선거 무효를 주장했고 선거일 당일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어요. 시위 진압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고 870여 명이 부상을 당했을 정도였죠.
이후 한 달 뒤 4월 11일, 시위에 참가했던 마산상고 김주열 군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시위는 다시 격화되기 시작했어요. 4월 18일에는 서울 시내에서 부정 선거 규탄 시위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을 정치 깡패들이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학생들이 도로 위에 쓰러진 사진을 보고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어요.
다음날 4월 19일, 부정 선거에 대한 규탄은 전 국민적인 규모로 커졌어요. 전국의 시민과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외쳤고 4월 25일에는 전국의 대학 교수들이 서울대학교 당시 문리대 교수회관에서 성명을 내고 시위를 했어요. 결국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렸어요.
4ㆍ19 혁명으로부터 6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우리나라는 평화로워졌어요. 오늘날 우리에게 당연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오늘을 보내 보아요.
하나의 글에 여러 사건이 등장해서 헷갈려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이 등장해서 헷갈린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정리해보세요."
윗글에서는 4‧19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경과 과정을 알려주고 있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적 사건을 정리하면 한눈에 이해하기 쉬워요. 윗글에 등장한 사건들을 정리해보면,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마산 대규모 시위 발생-4월 11일 김주열 군의 시신 발견-4월 18일 고려대 생 피습 사건 발생-4‧19 혁명 발생-4월 25일 교수 시위-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하야’로 정리할 수 있어요. 날짜나 숫자가 나오는 경우는 이 순서대로 내용을 정리하면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책을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 4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한국 정치의 흐름을 짚어줘요. 때론 혼란스럽고 어렵게 느껴지는 한국 정치사를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도와줄 거예요.
밑줄 그은 문장 한 줄
“권위주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정당성을 얻고자 했지만, 동시에 무자비한 독재의 몰락을 예고하기도 한다. 선거는 들끓는 민심의 반영이며 오늘날 민주주의 가치 실현의 제일 조건이다.”